미-이란은 뭘 주고받았을까? (주간조선 20150803) 언론글쓰기

미 이란은 뭘 주고 받았을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 주간조선 2015.8.3 

           

 

지난 714일 오스트리아 빈의 유엔사무소에서 이란 핵협상을 최종 타결지은 뒤 협상에 참여한 주요국 관계자들이 서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모하마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오른쪽 끝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7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 핵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2013년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긴 협상을 일단락지었다. 합의안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의 골자는 이란이 무기화 우려가 있는 핵 프로그램을 감축하는 대신, 서방에 이란에 부과한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한은 인정하되 향후 15년간 저농축(3.67%) 수준을 유지하고, 전체 농축 우라늄 보유 규모도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 본 합의를 통해 이란의 핵무기 보유 가능시점(BoT·Breakout Time)2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대신 이란은 해외 동결자산 해제, 금융거래 재개, 원유수출 정상화 등을 약속받아 통해 봉쇄 경제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최종 합의 사항을 보면 이미 42일 핵심 요소 합의에서 논의한 대로다. 협상 막바지까지 미·이란 양측 대표를 옥죄었던 것은 정작 우라늄 농축 수준이나 규모가 아니었다. 630일로 예정되었던 협상 시한을 세 차례나 연장하면서 논의했던 사안은 의혹을 살 만한 모든 군사시설 사찰 여부 연구개발 무기금수조치 및 탄도미사일 기술 금지 여부였다.

미국은 기존에 보고된 핵 시설이 아닌 여타 군사시설에 대한 사찰 및 검증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3의 장소에서 비밀리에 개발을 시도한다는 의혹이 있으면 즉각 검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란은 주권국가가 자국을 방어하는 모든 군사시설을 외국에 무작위로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논쟁 끝에 결국 이란과 주요 6개국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제원자력기구 주도로 사전 합의하에 조사를 시행하고 통제된 사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무기 및 탄도미사일 기술 금지 관련 논쟁도 유지와 해제를 두고 갑론을박 끝에 무기는 5년 후, 탄도미사일 건()8년 후에 해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구개발의 경우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하에 제한적인 수준에서 신형원심분리기 연구는 허용하되 신형원심분리기로는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워낙 팽팽한 쟁점이기에 쉽사리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지만 결국 2주간의 연장시한 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인물이라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8일간 빈에 머물렀다. 미국 역사상 국무장관이 가장 오래 해외에서의 공무로 한 도시에 체류한 기록이다. 그만큼 힘을 다한 협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협상을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비유했다. ()의 장막을 걷어 젖히고 새 시대를 만들려 했던 당시의 결단과 이번 이란 핵협상은 비견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줄곧 악화일로였던 미국·이란 양국 관계의 틀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9·11 후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압박해 온 미국이 이렇게 협상기조로 돌아서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외교 외에는 뾰족한 답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전쟁이나 제재로 이란의 핵개발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화를 통해서라도 이란의 핵무기 보유는 막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오바마 대통령의 세계관과 중동전략이 덧대어졌다. 물론 협상을 지지하는 이란 로하니 대통령 변수도 중요했다. 이번 협상을 타결로 이끈 가장 큰 동력은 미국·이란 양국 대통령의 의지였다.

취임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국민에게 페르시아의 신년 노루즈(Nowruz)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30년 넘게 이어온 양국 간의 긴장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메시지는 6년여 후 지구상에서 미국과 정치적으로 가장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이란과 미국이 극적인 핵협상 타결에 이르는 전조였다.

오바마 정부의 중동전략은 이전 정부와는 사뭇 달랐다. 9·11이라는 미증유의 테러를 당한 부시 대통령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패권적 일방주의, 공세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중동 정치질서의 변화를 추진했었다. 이른바 중동민주화 구상’, 부시 독트린이었다. 힘으로라도 중동을 민주화시키면 영속적인 평화가 도래한다는 민주평화론에 기댄 다소 순진한 발상이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714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photo 연합

     


이어지는 내용

오바마-로하니 전화통화... 미-이란 관계 이야기... 세계와중동

오바마-로하니간 역사적 전화통화 

금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이루어진 오바마 대통령과 이란 로하니 대통령간의 전화통화는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로하니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란의 국방원칙에 WMD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핵개발 관련 이란의 의도에 대해 일종의 해명을 했다. 이는 기존 호메이니와 하메네이를 통해 이어졌던 '대량파괴무기는 이슬람의 원칙에 반한다' 는 종교적 금지해석 (religious prohibition)을 세속 정치의 리더가 구체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 정권교체를 의도하지 않으며, 핵의 평화적 에너지 이용주권을 인정한다고 이야기했다. 양 정상간의 대화는 어쩌면 지극히 상식에 부합되는 내용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인 국가의 지도자간 대화라고 보기에는 어려울만큼 상호 인정하는 태세다. 앞으로 양국관계 진전이 주목된다. 1979년 이전, 미국과 이란 양국관계는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달만큼 지근거리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핵개발과 관련 현재까지 이란의 행보에서 결정적 violation을 보였다고 하기 어렵다. 그만큼 스마트하게 전략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난 2003년부터 계속된 국제사회의 핵관련 대이란 압박이후에도 늘 아슬아슬하게 레드라인 안쪽에서 움직이며 미국 및 국제사회와 긴장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강력한 생션 속에서도 늘 중국과 러시아 및 인근 국가를 통해 경제를 유지시켜왔다는 점은 신기할 정도다. 


지난 13년, 미-이란 리더십의 미스매치

그동안 미-이란 양국의 두 전직 정상, 즉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상극이었다. 아흐마디네자드는 예루살렘 지배세력 즉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자극했고, 핵개발에 있어서도 늘 강성기조를 유지했다. 부시 대통령 역시 만만찮았다.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중동 문제에 있어서 만악의 근원을 이란으로 보았었다. 

하타미가 이란 대통령이었던 2000년 부시 취임 직후 이란은 미국에 화해 제스쳐를 취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묵묵부답이었다. 2001년 9.11 직후 이란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먼저 미국 국민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냈고, 이런 테러 행태는 이슬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논평했으나, 여전히 이란은 미국 네오콘에게 악의 축이었던 것. 이후 아흐마디네자드가 이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아예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어디서든 으르렁 거렸고, 아흐마디네자드는 초지일관 반미 노선을 견지한다. 

금번 화해무드는 리더십 교체가 변수로 작동한 것. '부시-하타미' (2000-2005, 하타미의 구애, 미국의 냉담), '부시-아흐마디네자드' (2005-2008. 최악, 양자 충돌), '오바마-아흐마디네자드' (2008-2012, 초기 오바마의 화해 제스쳐, 이란의 거부)의 미스매치가 이제는 '오바마-로하니 (2013-) '로 바뀌면서 대화 급물살을 타게 되니 것이다. 결국은 국제환경이나 제도가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배경 변수임에는 틀림없으나 리더십도 중요한 변수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이란 지도자의 교체가 상황을 변화시켰다기 보다는, 이란 국민들이 변화를 희구했고 그 마음이 표심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나름 반응해야 할 상황임을 인지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입장에서는 임기내내 지옥도를 그리고 있는 중동에서 가장 레가씨가 될만한 사안으로 배팅해볼 필요도 있고. 그리고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핵개발 의혹 빼고는 이란이 악의 축으로 계속 설정되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기도 쉽지는 않다.  


이란의 항변

사실 이란측 인사를 만날 때마다 내게 아래와 같은 논리로 자신들의 정당함을 호소하곤 했다. 자기들은 정말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에 의해 엄청나게 불합리한 경제제재와 따돌림을 당했지만,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국의 핵개발은 무기 개발이 아니라 철저하게 에너지와 의료용이라는 것. 그리고 그 원자력 개발 계획은 혁명이전 팔레비왕정 때 미국의 강력한 설득과 지원으로 수립되었다는 것. (카터 대통령때 팔레비 정부에게 보낸 미국무부 문서 사본을 보여줌. 왠만하면 이런거 하나씩 다 들고 다니는 것 같다.) 

2. 이란은 아예 최고지도자가 핵개발은 반이슬람적임을 예배시간에 선포했다는 것. 외국에서 보면야 이런거 뒤집는거 쉽지 않냐고 하지만, 이란은 지금까지 호메이니의 파트와를 단 한건도 뒤집은 적이 없다고 함. 그만큼 무게가 실린 발언이라는 점을 강조함. (아무래도 아닌것 같은데... 증거가 없으니) 

3. 이란-이라크 전쟁때 적국 화학무기에 그렇게 당하면서도 결코 화학생물학 무기를 개발할 생각도 안했다는 것. 당시 야전군 사령관들이 분노하여 호메이니에게 이란도 화학무기 개발해서 사용하자고 건의했지만 호메이니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것. (이건 사실인 것으로 확인)

4. 이란은 NPT 탈퇴를 하지 않고, 계속 inspection을 받아왔다는 것. 물론 가끔 속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도 몰래 그런 적 있지 않느냐는 점을 강조. (약간 열받음)  

5. 이란은 지난 150년동안 단 한번도 외국을 선제공격하거나 침략해 본 적이 없다는 것.  

6. 민주주의가 문제라면,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나 다른 걸프 왕정과 비교해서 대통령, 의회 선거를 하는 이란이 왜 비민주적인지. 여성문제도 마찬가지이고. 

7. 알 카에다의 제1주적이 미국이라면, 제2의 적은 시아파 이란이라는 점. 이란은 그 누구보다도 알 카에다를 증오하고 격멸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점. 

8. 자기들은 핵에너지 개발하는데도 이렇게 난리라면, 왜 이스라엘의 250개 넘는 핵무기는 아예 언급도 안하냐는것.  

기타 등등 이런저런 불만으로 입이 나와 있다. 가끔 살만 루시디나, 이란의 고문, 민주인사 탄압, 선거 베팅 제도 등으로 반론을 펴보지만, 그래도 자기들만 악의 축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이스라엘과 기독교 근본주의자 들때문이라는 데에서 한치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이란이 2013년 가을, 태도 변화를 슬쩍 보이며 나선 것이다. 


미-이란 대화의 도전 요인

사실상 이란 입장에서 먼저 카드를 보인 셈이다. 이란 유권자들은 대선 1차 투표에서 로하니를 당선시켰다. 의외였다. 이는 변화를 희구하는 국민정서를 담은 시그널을 국제사회에 송출한 셈이다. 그리고 그 로하니는 가장 외교에 능하고 경험이 많은 외교관을 외무장관으로 임명하고, 다시 그를 핵협상 대표로 임명했다. 본인도 달라진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지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스라엘 소멸 운운 하며 도발했던 홀로코스트 허위설을 일축한 것이다. 로하니는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사실이며, 희생자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도 했다. 

이 정도 되면 대화와 협상이 술술 진행되어야 한다.  사실 그동안 P5+1 협상 과정에서 늘 미국이 최종 비토권자처럼 보여왔다. 오히려 영국과 불란서는 가끔씩 전향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기 때문. 하지만 만일 미국이 대화에 전향적으로 임할 경우, 상황은 급물살을 타며 화해무드로 나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반기지 않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미국내 호전론자들, 군산복합체

백악관과 국무부가 아무리 이런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향후 미-이란 협상에서 이란과의 화해를 바라지 않는 미국내 인사들은 제일의 도전 요인이 된다. 

사실상 이란의 존재는 테러리즘 세력과 더불어 냉전 해체 후 미국의 제1주적처럼 인지되어왔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노선과 이란 최고리더십의 반이스라엘 언사들은 인근 아랍왕정과 이스라엘을 경악시켰고, 이들을 후원하는 미국은 막대한 군사적 지원으로 역내 반 이란 국가들로 하여금 이란 위협에 맞서게 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군비지출은 막대하며, 사실 미국 군산복합체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사우디나 쿠웨이트, UAE 등의 미 무기 구매와 이스라엘과의 군사협력은 어쩌면 미군수부문을 살리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참에 이란과의 화해란? 누가 가장 긴장할 것인가? 

역사를 되짚어보면 매 10년 단위로 미국이 참전하거나 돕는 중요한 전쟁이 이어졌다. 50년대 6.25, 60년대 베트남전, 70년대는 데탕트로 넘어가고, 80년대에는 이란-이라크 전쟁, 90년대에는 걸프전, 2000년대에는 이라크전 및 아프간 전... 그리고 비단 이러한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미국은 1963년부터 매 40개월마다 군사행동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미시건 대학의 후안 콜 교수) 

여기에... 이란과의 화해에 화들짝 놀란 이들이 하나 더 있다. 


이스라엘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 이유는 워낙 선명하다. 과거 이스라엘과 미국간 인지적 동맹의 가장 중요한 근원은 소비에트의 위협이었다. 냉전기 소련의 위협을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중동에서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을 일종의 페바 처럼 배치하고, 전면에 터키를 배치하여 냉전을 관리했다. (아이러니컬 하지 않은가? 아랍이 아닌 중동내 3대 비아랍국가가 냉전때는 미국의 주요 군사우방이었다!) 그러다가 냉전이 붕괴되면서 이스라엘은 일종의 안보위협심리가 올라간다. 왜냐면 명시적 위협인 소련이 붕괴하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가 상실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마드리드 평화협상이 시작되었고, 라빈 총리는 미국의 안보심리가 변화하였으니 더 이상 막나갈 수 없겠다 싶어 스스로의 평화를 찾아내는 오슬로 협정에 참여하게 된 것. 

그러던 차, 이란 위협이 부각되고, 특히 이란이 역내 시아파 맹주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반전, 이스라엘의 최대적은 사담 후세인도 아니고, 사우디 왕정도 아니라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된다. 불과 1979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이란 양국은 사이가 좋아도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관계였는데. 암튼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로하니와 오바마간 화해제스처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걸프 왕정국가들

특히 사우디가 좀 걱정이 늘었을 것이다. 이란의 부상과 안정화는 곧 역내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하며, 이는 다시 걸프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 걸프연안에 거주하는 시아파들에게 작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우디 동부 알 하싸 지역, 다람, 담맘, 코바르 지역에 거주하는 시아파들이 정치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까 하는 우려이다. 물론 이들은 이민족인 이란과 연대하여 정치적 변화를 꿈꾼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어떻든 내적 안정성에 변화가 오는 것은 왕실로서는 부담이 크다. 

그러나 바레인의 경우 직접적 위협이 된다. 워낙 자국 인구중 다수가 시아파이고, 또 이들 시아파 중 상당수는 오리진 자체가 바다건너 페르시아인 경우도 많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란의 영향력이 침투하지 않기를 바랬을텐데... 아무튼 예의주시해야 할 일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걸프 왕정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이란이 핵을 만들지만 않는다면... 하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기에 일종의 양가감정이 작동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내 페르시안 디아스포라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당시 팔레비 정권의 핵심 인사들과 기득권자들의 다수는 서방으로 망명했다. 주로 유럽으로 이주했지만, 상당수는 미국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마치 유대인 디아스포라처럼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반 이란 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유대인처럼 내놓고 활동하지는 않는다. 다만 워싱턴 정가 서클 요직에 네트워크를 연결하여 반 이란 정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페르시아판 로비를 지속했던 것. 아무래도 이번 조치에 대해 전부는 아니겠지만 다수는 좀 께름측하게 바라볼 것으로 추측된다. 


Pivot to Asia, Pivot Back... and Pivot again?

미국의 대외정책관련 금번 오바마 연설을 보면 거의 중동이슈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 문제나 중국견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결국 미국의 아시아 피봇은 아직 때가 아니고, 빨리 중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몸의 무게중심을 아시아에 둘 겨를이 없음을 주장한다. 

그런데 만일... 미국과 이란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지고, 생션도 해제되고, 이란은 정상국가화 하여 석유,가스 수출을 통한 국부가 증진되는 등의 반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란과의 화해를 통해 아시아 피봇을 다시 시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듯. 내 생각이 중요한게 아니라, 다음 미 대권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녀는 아시아 피봇을 적극 추진했었는데.... 


한국에게는?

만일 미국-이란간 극적인 핵협상이 타결될 경우, 사실상 전 세계에서 핵문제 쟁점은 북한만 남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부터 벤 로즈 백악관 NSC 부대변인은 이란과 북핵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이란은 아직 해결점이 남았지만, 북한 얘들은 이미 일 다저지른 애들이라는 뉘앙스였다.  이런 현실이 한반도 안정에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이란 협상을 성공적인 사례로 이끌어가면서 콘트라스트를 북한에 보여주려고 할 가능성이 있는 바, 오히려 코너에 몰리는 북한이 오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은 된다. 그래서인지 어제오늘 중국의 대북한 행보에 변화가 살짝 감지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암튼 경제, 문화적으로 볼 때... 미-이란 관계 정상화는 한국에게는 여간 매력적인 소식이 아니다. 일단 이란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어떤 국가의 소프트파워보다 우위에 있다. 아직도 양곰이 (대장금)와 주몽이에 대한 열혈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산 가전제품은 생션중에도 이란 중산층 가정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자동차도 그렇고... 무엇보다 성정이 비슷하고 지적 능력이 뛰어나서 인적 교류에도 큰 포텐셜이 있다. 

카스피와 걸프를 아우르는 이란이 본격적으로 에너지 개발 현대화에 나설 때, 우리의 진출 여건은 비교우위가 있다. 이란 주민들의 구매력이 높아지면 우리 상품의 진출 가능성도 고무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앞으로 핵협상이 잘 진행되어 미국이 들고 있는 노트에서 '악의 축' 하나가 사라지고 (뭐 지금도 이 개념은 거의 무의미하지만...) 테헤란로와 서울 블리바드가 더 길어지고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  

케냐 웨스트게이트 몰 테러사건과 이런저런 단상 세계와중동

알 카에다, 사하라를 넘고 홍해를 건너다

케냐 웨스트게이트 쇼핑몰 사태의 주범으로 알려진 알샤밥은 2008년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바 있다. 알샤밥은 이슬람법정운동 (Islamic Courts movement)  이라는 근본주의 단체의 한 분파로 이슬람 성법에 의한 소말리에 건설을 추구해왔다. 정확한 이름은 Harakat al-Shabab al-Mujahideen) 이다. 이들의 베이스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였으나 2011년여름부터 AMISOM (African Union Mission in Somalia) 가 주도하는 소말리아 다국적군 소탕작전에 의해 세력은 약화되는 추세였다. 더우기 작년초 아미솜을 비롯 케냐, 이디오피아 등이 결성한 합동평화유지군에 의해 그나마 알샤밥의 거점항구 역할을 하던 키스마유 (Kismayu) 항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계속해서 패퇴하며 멸절위기에 처하자 알샤밥은 악에 받치게 된다. 인근 케냐와 이디오피아에 대한 위협감 및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에 따라 남서부 케냐 국경에서 끊임없는 약탈과 싸움을 지속하기 시작했다. 더 남부인 우간다 축구경기장 폭탄테러 사건도 알샤밥의 소행이다. 그러나 어떻든 이들의 위세는 작년이맘때까지 점차 약화되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들에 대한 위협 경계 수준도 인근 접경국가내에 한정되어 유지되었던 것. 

조직의 유지 및 생존에 관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면, 동맹을 모색하거나 아니면 머리조아리더라도 기댈 원군을 찾게 된다. 이들 알샤밥은 마침 역시 구조조정 국면에 있던 알 카에다와의 연대를 택하게 된다. 작년 초의 일이다. 오사마 빈라덴의 부재로 휘청거리며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던 알 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알 샤밥의 지도자 무끄따르 알 주바이르 고다네와 손을 잡게 된다. 알 카에다 입장에서는 거점을 다양하게 산개하면서 수평적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편것이다. 

알샤밥 입장에서도 나름 전략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알샤밥은 소말리아 내부의 투쟁에 역점을 두어왔고, 자국내 이슬람 국가 건설에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국경을 마주하는 이디오피아나 케냐의 거버넌스 수준이 아프리카에서는 상대적으로 견고한 편이었기에 이슬람 혁명 및 원리주의의 수출은 애초부터 택하기 쉬운 옵션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들이 아프리카 다국적군에 의해 코너에 몰리면서 역외 이슬람 세력과 손을 잡게 된 것이다. 모 아니면 도의 선택을 한 것. 즉 역내 테러집단에서 스스로를 국제테러리즘으로 변신시키면서 생존을 모색한 것인데, 이는 국제사회의 대테러 타겟이 된다는 점에서 리스크라 할 수 있다. 암튼 알샤밥은 리스크 테이킁을 한 셈이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미국이나 서방의 입장에서도 이들의 국제화는 최악의 상황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보면 바브 알 만데브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의 뿔 (Horn of Africa)간 테러연대가 이어지는 구도는 최악이다. 예멘을 베이스로 하는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AQAP) 프랜차이즈가 대륙을 넘어서 실패국가 소말리아의 이슬람 집단과 결합하게 된 것. 단순히 AQAP 뿐 아니라 북쪽 리비아 등지의 불안을 틈타 다시 세를 넒히는 알카에다 이슬라믹 마그레브 (AQIM)가 말리로 서진함과 동시에 사하라를 넘어 소말리아로 남동진, 그리고 나이지리아로 남진하는 과정에서 소말리아는 양쪽 알 카에다 프랜차이즈와의 연대가 가능해진 것이다. 수평적으로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과의 연대설이 모락모락 나오면서 아프리카는 이제 새로운 이슬람 테러리즘의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거버넌스가 아직 완성되지 않고 치안공권력이 불안정한 아프리카 지역에 이슬람 무장집단이 확산되면 향후 이들의 단일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이념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불안감이 증폭하는 것도 사실이다. 


알 카에다 2.0: 테러와의 전쟁, 새로운 국면

지도자 교체의 격변기를 겪은 알 카에다의 전략은 이제 더이상 테러를 직접 기획, 실행하는 위계적 중심이 아니다. 이제는 어차피 물리적으로 전사들을 규합, 훈련시킬 로지스틱스를 대기도, 적절한 허브를 찾아내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왠만하면 미국의 정보망에 걸리게 되어있고, 드론 공격의 타겟이 된다. 

그렇기에 알 카에다 시즌 2는 새로운 성격의 테러집단의 때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프랜차이즈화, 다운로더블 테러, 외로운 늑대들의 규합'으로 구성되는... 즉 알 카에다 브랜드 판매 전략이다. 지역 거점은 북아프리카 (AQIM), 아라비아반도 (AQAP), 그리고 미군 철수 이후에 혼돈이 점증하는 이라크 (AQI) 등에 프랜차이즈화 되어있다. 이들은 서로간의 밀접한 연계망을 유지, 운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의 이념하에 뭉쳐 '알아서' 자기 작전을 독립채산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아프간 어디메 사령부를 타격하여 궤멸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된 것. 이런 맥락에서 알 카에다는 알 샤밥과의 연대를 프랜차이즈 가맹점 확대 차원에서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를 통해 전선을 교란할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역할은 테러의 기획,실행이 아니라 지하돌로지의 개발과 전달과 확산, 그리고 설득이 되었다. 마치 테러 섭스턴스의 전달자가 된 것. 

한편 이렇게 만들어진 지하돌리지는 테러집단의 전술 교범 교리 등과 함께 인터넷에 탑재되어, 실시간으로 전세계의 프랜차이즈 및 잠재적 테러리스트들 (외로운 늑대들)에게 전파된다. 다운로드를 통해 교리에 더욱 충성을 맹세하고, 다운로드를 통해 폭탄 제조법을 배우며, 다운로드를 통해 실행기법과 프로파간다를 익힌다. 이러한 웹사이트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개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지고 폐쇄된다. 위성첩보나 감청 등을 통해 사령부의 위치를 파악하여 때리는 구도는 이미 별무소용이다. 잠재적 테러 집단 구성원들은 지금도 일상속에 일번 커뮤니티 멤버로 살아가고 있다. 훨씬,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된 것이다. 

알샤밥도 나름 이런 추세의 산물이다. 이는 케냐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케냐 내 젊은 무슬림애들이 포섭되어, MYC (Muslim Youth Centre)를 결성하여 케냐판 알샤밥을 만들고 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이제 케냐판 알 카에다 브랜치 정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기독교도와 무슬림간 공존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온 케냐에게 작지 않은 위협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를 알 카에도 동아프리카 지부 (AQEA)로 부르면서 블러핑을 하기도 한다. 개나소나 알 카에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다 위협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푸틴과 아사드는 웃고 있다. 

역설적으로 어제 9월 22일 하루, 외신은 케냐 웨스트케이스 쇼핑몰 테러와, 파키스탄 페샤와르 기독교회 공격을 통한 77명의 사망소식과, 이라크 폭탄 테러 소식을 계속 번갈아가며 보도했다. 케냐 사태가 알 카에다 연계 테러라면, 파키스탄 페샤와르 사건은 종교간 갈등이다. 특히 기독교도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이라크는 종파간 갈등이 끝간데 없는 폭탄 공격으로 이어진 사례다. 즉 중동 이슬람권의 다양한 갈등 폴트라인이 어제 하루에 이곳저곳에서 피로 얼룩지는 충돌을 낳았던 것이다. 

아사드 입장에서는 어제의 불행한 사건 셋 다 매우 의미있는 호기이다. 그렇게도 반군세력 내부에 알 카에다가 있으므로 서방은 반군을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떠들었지만 미국과 유럽은 아사드 목을 졸랐는데 이렇게 케냐 테러사건이 나면서, 진짜 시리아 반군을 도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더우기 페샤와르의 반기독교 린치 사건은 시리아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다수의 기독교도가 아사드 편이거나 중립적 입장을 취해오면서 알 카에다의 방계인 반군내 알 누스라 전선은 강력한 기독교도 소탕 레토릭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만일 반군이 집권할 경우 잔혹한 기독교도 대상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을 암시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반군 지원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라크도 마찬가지이다. 아사드는 이 점을 집요하게 부각시키며, 자기를 실각시켰다가는 시리아에 지옥도가 펼쳐지고, 끊임없는 학살과 이슬람 테러의 집산지가 될 것이라는 점을 흘리고 있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말이 아니니... 
미국을 위요한 서방국가들은 돌아버릴 지경일 것이다. 

자기백성 학살한 독재자 편을 들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알카에다 편을 들 수도 없는 것. 
"누가 우리의 주적인가?" 계속 헷갈리며 완벽한 딜레마 상황으로 점점 빠져들고... 이를 아사드와 푸틴은 흐뭇하게 즐기고 있을 것. 


이란, 상황반전의 극적 다크호스 물망에 오르다

요새 이란이 심상찮다. 로하니 대통령의 계속되는 '구애'공세는 현란하다못해 신기하다. 거기까지는 그렇다치자. 최고지도자의 언행도 만만찮다. 특히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지난 주, 그 어떤 국가도 핵무기 보유는 안된다는 입장을 천명했지만, 그동안의 원론적인 언급과는 달리 이란도 핵을 가지지 않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했다는 평가다. 새 외무장관이 트위터를 통해 서방 정치인의 딸과 나눈 재밌고 훈훈한 SNS 소통 이야기는 이제 애교수준을 넘어선다. 

이란은 계속해서 알 카에다를 비난해왔고... 알 카에다는 이란 시아파 정권은 반이슬람적이라 공격해온 점에서 최근 알 카에다의 급속한 부상은 이란 신정부 출범과 맞물리면서 어쩌면 중동의 전반적인 지형에 변화를 가져다줄 지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가능성은 아직도 20% 이내이다. (내맘대로 계산법) 그러나 과거 2-3%에서 훨씬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로하니 대통령은 대미관계에 있어서 자신을 전임자와 비교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인자하게 웃으며 언론에서 계속해서 대미, 대서방관계 변화의 운을 떼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그림으로 보면 이 지역의 다이내믹스는 정말 현란하기 그지없다. 사람만 다치지 않는다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단. 이번 케냐사태 관련 언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 내 연구 나와바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임을 명확히 않으면... 자칫 또 하나의 신개척지를 떠맡게 될지 모른다. ㅠㅠ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덧 하나. 더 황당하면서도 더 소름끼치는 시나리오는 이거다. 알샤밥이 소말리아에서 계속 발호하며 후일 해적들을 포섭 조종, 아라비아 해 앞을 쑥대밭을 만든다면 아시아와 유럽, 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해상수송로가 어찌될 것인가.... 

덧 둘.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로축구팀인 알 샤밥은 창졸간에, 이번 사건에서 사망, 부상한 희생자 다음가는 희생자가 되었다. 

Maaloula 이야기... 서방의 고민... 세계와중동

이슬람권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5가지의 정체성 층위를 이야기한다. 

1. 아싸비야 (부족 준거 정체성) - 사우드 가문, 까시미 가문, 나흐얀 가문 등에 촛점.
2. 와따니야 (국가 준거 정체성) - 이집트, 시리아 등 국가에 촛점. 
3. 까우미야 (문화, 언어 준거 정체성) - 아랍 민족주의
4. 움마 (이슬람 종교 준거 정체성)
5. 밀레 (이슬람권에 거하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소수종교 정체성, 오토만때 발원) - 이집트 콥틱, 레바논 마론파 등.



시리아 말룰라에 사는 소위 '밀레' 공동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  

얼마전 시리아 반군중 수니 근본주의자들로 구성된 무장단체가 말룰라 (Maaloula)를 점거, 수도원과 교회, 성모상을 파괴하면서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말룰라는 시리아내 기독교인들이 모여사는 오랜 도시 중 하나이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말룰라에 사는 3천여명의 기독교신자인 아랍인들은 아랍어와 아람어 (고대 시리아 언어로 예수 당시 사용했던 언어)를 구사한다. 언어 자체로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 

시리아의 기독교인은 많게는 15%, 적게는 10% 내외로 추산된다. 대개가 동방 정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정교회간의 네트워크가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 내부로도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부는 교황의 무오설을 지금도 믿고 있으며, 동방정교나 로마교회를 뭉뚱그려서 믿는다고 고백하는 시리아 크리스찬도 존재한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대개 중립적이거나 아니면 아사드 편이다. 왜냐하면 순니파들에 비해 아사드 정부의 공식적 종파는 알라위파, 즉 시아파의 다섯이맘파에서 발원한 변종인데 이들은 기독교 전승과 묘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도 하고, 복음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슬람의 핵심인 금요 주마예배도 잘 안드리려 한다. 그렇기에 선택적 친화력을 따지자면 시리아 기독교는 아사드의 알라위파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상징과도 같은 말룰라를 알 카에다가 그냥 놓아둘리가 없었다. 기독교인이 자기들 땅에 사는 것도 열받는 판에, 그들이 시아파 변종 아사드와 내통하는 것같은 이들 기독교 세력에게 적대적인건 자연스럽다. 반군 세력 중 수니 근본주의자들은 포격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 다수의 주민들은 철수를 하는 형국이었다. 마치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제단 중 과격세력이 콥트교도들에 대한 분노를 결집시키며 엘시시 정부에 반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정적(?) 실책이라 할 수 있다. 서방 기독교권의 지원이 절실한 반군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격 자체가 얼마나 자해에 가까운 가를 절감하기 시작했다. 알 카에다가 자꾸 분탕질 하면서 반군결집력을 약화시킨다고 입이 나오는 것. 반면 러시아는 쾌재를 부를 듯. 자기들의 종교적 베이스인 정교도들이 반군에 의해 고초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얼마나 좋은가?

암튼... 상식적으로... 아사드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군을 지원하려고 유럽과 미국이 고심하는 판에, 그 반군들이 기독교인들 마을에 들어가 유네스코 유적을 파괴시켜버리고, 기독교인들 몰살 의지를 나타내니... 특히 무장지원을 선언한 프랑스로서는 한숨이 나오지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넘들을 도와야 하는건가??? 하는 한숨일거다. 나아가 만일 이런 세력이 아사드 몰아내고 정권잡으면 그나마 소수파인 기독교인과 드루즈파들에 대한 대량학살 또는 강제추방이 일어나지 않는 보장이 없는 것. 그래서 그런지 자유시리아군 내에서도 반성이 있었던듯 아래와 같은 기사가 떴다. 

http://www.france24.com/en/20130911-syrian-rebels-withdraw-christian-town-maaloula

아랍과 이슬람이 압도하는 중동의 단일한 이미지 속으로 이렇게 말룰라 같은 아름다운 정경의 기독교문화가 스며져있는 것은 참으로 귀한 데... 어떻게 해서든 지켜내야 하는데... 

일단 물러났다니 다행이긴 한데... 걱정이다. 여전히. 

샬롬 알레 카... 앗쌀람 알레이 꿈...

     
            (절벽밑 말룰라 교회당 모습)



2012년 3.1절 세렌디피티

3.1절. 국경일은 여럿 있지만 현충일과 더불어 짠한 날이다. 내 나라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할 이유는 제각기 다를거다. 흔히들 사랑할 꺼리나 자랑할 꺼리를 찾아 하이라이트한다. 그러나 내 나라는 큰 나라도, 멋지고 수려한 경관을 가진 나라도 이니고, 자원 부국이거나,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과 정복의 역사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내세울' 꺼리가 없다.
그럼에도 내 나라를 사랑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모진 풍파 속에서도, 짓밟히면서도 그냥 사그러들어가지 않고 끝까지 뻗대며 생존을 지켜왔던 선각자들과 민초들의 꿈틀거림 아닐까? 그러기에 3.1절이 더 섬세하게 와닿는다.
개인적으로는 민족주의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압제와 탄압에 맞서싸우는 기제로서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그 역사적 엄위성과 존재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단 저항적 차원에서의 민족주의가 배타적, 패권적 민족주의로 변질되면 곧 나찌와 파쇼, 그리고 도조 히데키라는 괴물로 일순간 변화할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암튼 3.1절은 늘 저항적 주체로서의 풀뿌리를 기억하고 되새기면서도, 동시에 높아진 한국의 지위와 위상으로 혹여 약소국가를 만홀하게 볼 수 있음을 늘 조심하는 기억의 메멘토가 되어야 한다.

2011년 마지막날에 fb 친구들에게 세렌디피티

페이스북 친구분들께 인사올립니다. 

올 한해 아랍의 봄과 함께 시작한 정신없던 일들로 많이 분주했고 그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친구들의 성찰과 사색 그리고 유모어를 접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자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이 공간이 그저 신변잡기 나누고 소식전하는 마당에 불과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소소한 이야기꺼리 속에 담긴 지혜들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며 기뻐합니다. 존경하고 모시는 직장 간부님들부터, 제 수업을 들어주었던 연수생, 학생들... 그리고 열살 아들래미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사람 이야기'를 건네 듣는 기쁨은 컸습니다. 

모쪼록 2012년 새해에는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642명의 친구분들 모두에게 좋으신 구주예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새해에 더 깊은 평화 누리시길!

인남식 올림.

숱한 외동 소황제들의 중국 세계와중동

중국의 행보와 관련된 박용민 선배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한자녀낳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중국은 이제 독특한 가족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정책이 지속되어오면서 자기 형제가 없는 것은 물론, 이모 고모 숙부 백부도 당연히 없는 가족구성체가 되었다. 따라서 사촌의 개념도 없어지고... 

가족은 계약공동체가 아닌 혈연공동체이기에 그 1차집단의 성격상 형제간에는 다투다가도 필연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차피 가족 울타리에서 함께 살아가야할 대상이기에 불편하더라도 내 것을 양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대략 형이 아우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양보하는 분위기를 체득한다. 우리나라도 경우에 따라 자녀가 한명인 가정이 있게마련이지만, 대개가 사촌이 있거나, 아니면 친구들 형제자매를 보면서 간접 체험을 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중국처럼 사회전체가 그렇다면 좀 이야기가 다르다. 

만일 중국 정책결정자들 거의 대부분이 형제 자매없이 외동이로 성장했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정 문제로 국한되지 않을듯 싶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아독존 성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훗날 중국이 명실상부한 G2로서의 자리매김을 명확히 할 때, 보여줄 외교적 행태가 어떨지 약간 걱정이 된다. 대국의 입장에서 주변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를 보여줄까?

정확한 디렉션, 리더의 책무 세렌디피티

직원들이나 연구원에게 무슨 일을 시켰을 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십중팔구 일을 시킨 내 책임이 크다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 궁금했던 것은 직원이나 연구원들의 스펙이 이렇게 화려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뛰어난데, 도대체 왜 보고서나 기안은 이정도 밖에 못하는가였다. 기본적으로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두번 이런 불만이 겹치게 되면 나는 그 직원에 관한 기대를 더 이상 갖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불성실한 직원으로 매도하게 된다. 

그런데 국립외교원건으로 만났던 모그룹 임원이 들려준 HR의 기본은 내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이야기인즉슨,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적확한 소통의 기제 없이 구체적인 요구를 적시하지 않은 지시로 인한 결과물은 결국 지시자의 책임이라는 것.

즉 돈까스를 튀겨오라고 시켰을 때, 나는 내가 그리는 돈까스의 두께와 육질과, 튀김옷의 바삭거림 정도와 크기.. 이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주문을 해주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요새 세대의 돈까스는 우리 세대의 돈까스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기대와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할 경우, 하나하나 지시자가 원하는 내용을 찬찬이 알려주어야 하고, 결과물이 완료되기 전 각 단계마다 (즉 돈까스 고기가 준비되고, 튀김옷이 만들어지고, 기름을 끓이고 하는 모든 과정마다) 직접 직원을 불러 확인하고 지시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지를 지켜보고 일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칠 부분을 알려준 후 각 과정별로 일어나는 한두번의 실수는 반드시 웃음으로 넘어가주라는 것. 

이러한 찬찬한 과정을 거치고도 일을 못할 경우는 직원의 책임이지만, 이러한 일러줌과 관찰, 소통의 과정없이 직원을 절대 비난하지 말라는 통렬한 비판을 들었다.ㅠㅠ 전공공부보다 이런 게 더 어렵다.... 

어떻든 과장급 이상의 중견관리자들은 반드시 HR 팀 리더십 훈련을 해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을 제대로 세워주고, 그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조직의 역량 극대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기업보다 퍼블릭섹터가 이런 부분에서 뒤떨어지는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너무 많은 의사소통의 도구들 세렌디피티

나를 둘러싼 의사소통의 경로가 도대체 몇개인지... 

핸드폰, 사무실전화, 회사 메신저, 네이트온 및 엠에스엔 메신저, 페이스북 메신저
핸드폰 문자, 카카오 톡, 아이메시지, 바이버 폰, 스카이프, 트위터, 이메일도 회사메일, 지메일, 천리안, 핫메일, 다음메일, 서울대, 연세대, 외대 메일.... 

안테나 잔뜩 꽂은 기괴한 모습의 외계인 같다. 장기 출장이라도 다녀올라치면 일단 비밀번호부터 헛갈린다. 쏟아져들어오는 숱한 메시지들, 의사소통의 내용물들... 

언젠가 소통 수단이라고는 집전화밖에 없었을 시절, 그 때보다 우리는 더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는걸까?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과정 설명회 강의실에서

사진: [국립외교원 설명회] 어제,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개최된 국립외교원 선발시험 및 교육과정 설명회에 약 600여명이 참석해주셨어요!  이번 설명회를 통해 선발시험과 교육과정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혹시나 시간이 안맞으셔서 못오신 분들! 걱정마세요~설명회 배포자료는 http://bit.ly/stdsN5 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


올 해 공식적으로 마지막 행사인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 및 교육과정 설명회가 어제 열렸다. 600명이 넘는 참가자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고위 외교관의 길을 걷고자하는 이들에게는 이제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되면 국립외교원에 입학, 1년간의 교육훈련과 평가를 거친 후 최종 임용되는 새 시스템에 관한 궁금증이 클 터, 그 첫 설명회자리였다. 

사회를 보면서, 추위에도 불구하고 강당을 가득 채울만큼 이곳까지 찾아준 저들이 새삼 고마웠고, 응원하고 싶었다. 질의하는 내내 그들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하나하나 눈빛이 진지했고, 정보 한조각에 목말라하는 심정이 보였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이들 중 몇명이나 2년 후 다시 이곳에 발을 딛게 될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소원하는대로 자기 꿈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저 열정에 맞추어주는 설명에 덧대어, 한가지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외교관은 화려한 직업이 아님을. 해외여행 자체가 어렵던 옛날처럼 외교관이 특별한 경험을 하는것도 아니고, 생활여건이 어려운 험지에서 살게될 경우가 많을것임을. 실제로 156개 공관 중에서 한국보다 살기 편한 나라는 이제 손꼽을 정도가 될만큼 힘든 해외 생활을 감수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것임을. 평생을 짐싸고 짐푸는 고단한 여정을 걸어야 할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충분히 어려움을 감수하고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이 기꺼이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외교관은 Foreign Service Officer 이며, 신분상 공무원 civil servant이다. 섬기는 일이다. 실력과 잠재력도 중요하지만, 공동체를 위해 섬길 수 있는 각오와 결단, 그리고 희생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2013년, 이런 사명의식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년부터는 교육과정 개발에 본격적으로 바빠질 것 같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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