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태 3. 황당한 이스라엘 세계와중동

1979년 이스라엘의 메나솀 베긴과 이집트의 안와르 알 사다트가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역사적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었을 때 세상은 요동했다. 그 해에는 이란 이슬람 혁명도 있었고, 소련의 아프간 침공도 있어 워싱턴은 노심초사했던 해였지만 그나마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인해 중동내 가장 고질적 분쟁 원인이었던 아랍이스라엘간 평화의 초석이 놓여진 셈이었기에 카터는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이 협정으로 인해 사다트는 암살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 협정의 최대 수혜자는 이스라엘이었다.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가장 적대적이었고, 낫셀 당시 아랍의 명실상부한 지도국가인 이집트와 수교함에 따라 상당부분 안보 위협이 감소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카이로는 전 아랍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결국 아랍연맹 본부까지 암만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후 카이로와 예루살렘은 이런저런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아왔다.
무엇보다 카이로 정보기관과 이스라엘 모사드 간에는 매우 중요한 정보협력이 상존하고 있었고, 양국 안보에 필수적인 채널이었다. 물론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교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미국에게 상당한 액수의 지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고...

금번 이집트 사태는 어떻게 귀결되더라도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게 된다. 설령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다 하더라도, 오히려 대 이스라엘 관계의 투명성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 경우 현재 무바라크 독재정권과 비밀리에 유지하던 소위 black unity가 붕괴될 가능성이 커짐을 의미한다. 물론 반미, 반이스라엘 이슬람 정권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충격과 악몽이 될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으로부터 영감과 지원을 받아 창설된 하마스는 벌서부터 가자지구에서 들썩들썩하는 기미가 보인다. 라파 검문소 자체가 봉쇄되었으나 이집트 공권력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간의 분리는 무의미하게 된다. 이스라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우기 현재 이스라엘과의 협약에 의해 시나이반도를 비무장지대로 설정하고 있는데 향후 갈등관계가 노정되기 시작하면서 시나이반도에서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이집트에서 반이스라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면, 이스라엘은 북쪽으로 레바논 헤즈불라, 북동쪽으로 시리아, 그리고 남쪽으로 이집트의 협공에 다시 시달리게 되면서 사실상 1967년 그 호전적 상황으로 회귀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이스라엘을 안보 패닉 상황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발적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정보부와 외교부는 지금 초비상 상황속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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