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아랍 민주주의, 출발선에 서다 언론글쓰기

2.23일자 컬럼.

튀니지와 이집트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아랍 역사상 첫 시민혁명이며 미증유의 대격변이다. 벤 알리, 무바라크 정권을 쓰러뜨린 시민 저항의 불길은 리비아와 예멘 등 인접국으로 전파되고 있다. 상상하지 못한 속도다. 피흘림을 각오하고 시위에 나서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 상황은 단순히 특정 아랍 국가들의 정치적 변화로 국한할 수 없다. 냉전 해체에 버금가는 국제정치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전조로 해석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아랍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낙관은 이르다. 뿌리 깊은 갈등과 균열의 요인이 여전히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랍 내부의 다양한 정체성과 연관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족주의와 종파주의이다. 지금까지 아랍 독재정권은 압박과 회유로 소수 부족과 종파의 불만을 억눌러왔다. 이러한 불만이 최근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던 차에 한 튀니지 청년의 분신자살은 기름을 얹었고 불을 댕겼다. 수면하에 있던 부족·지역·종파 등 고질적 분열과 갈등 요인들이 동시다발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저에 있는 이런 분쟁 요인들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번 사태를 빵과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시민혁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그런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아랍 국가 내부에는 훨씬 더 복잡한 분쟁 요인들이 교차하고 있다.

최근 리비아 유혈 사태는 부족주의에 기반을 둔 동서 간 갈등에서 촉발됐다. 리비아 동부지역을 통칭하는 키레나이카 지방은 유전 밀집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위치한 서부 트리폴리타니아 지방에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다. 이웃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와팔라·주와야 등 리비아 동부지역의 주요 부족들을 자극했고, 곧바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부족주의에 기반을 둔 지역 간 갈등 요인은 사우디아라비아·예멘 등에도 상존하고 있다.

바레인 사태는 전형적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주의 갈등이다. 다수 시아파를 통치해 온 소수 수니파 칼리파 왕정(王政)에 대한 반발이 가시화된 사례이다. 이는 바레인 내부 문제를 넘어서 최대 수니파 왕정국가이자 이슬람 종주국(宗主國)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불안정성과 직결된다. 바레인과 맞닿아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유전지역 동부 알 하사 지방에는 시아파가 밀집거주하고 있다. 리야드 왕실에 차별과 억압을 당해온 사우디 시아파는 바레인 시아파의 시위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들 시아파 연대의 정치적 저항을 시아파 국가인 이라크 및 이란이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이란~이라크~바레인~사우디 동부까지 시아파 띠가 걸프 연안을 따라 연결되는 형상이다. 이럴 경우 사우디의 불안정성 심화로 이어져 걸프 연안이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

이제 아랍의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눌러오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자유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식민시대와 냉전을 거치면서 켜켜이 쌓여 온 갈등과 분열 요인들도 가시화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아랍 시민들의 용기 있는 저항과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평화 정착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랍 시민들은 종파주의와 부족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세워야 할 장도에 이제 첫발을 올려놓았다. 기대가 크지만 갈 길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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