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부채를 갚는 것에 다름 아니네 세렌디피티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쿠스의 논쟁은 늘 흥미롭다. 학부 1학년때 몇몇 대학 신입생들끼리 정치학 연합 스터디를 만들었었다. 그 스터디에서 동기들과 함께 고전을 읽으며 토론했던 첫 주제였고 가장 매력적인 이야깃꺼리였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승 소크라테스를 통해 '폴리테이아'에서 발화한다. 절대적 윤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에 맞서, 만물의 척도가 인간이라고 믿는 궤변론자에 속하는 트라시마쿠스는 진리의 상대성, 다양성을 설파한다. 

칼케도니아 출신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쿠스의 '정의'론은 단순하면서도 파괴력있게 다가온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규범"이라는 그의 주장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 21세기 국제정치 현실에 그대로 투영되어 많은 함의를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 

반면 산파술을 이용한 논쟁에서 늘 승리하다 트라시마쿠스와의 논쟁에서 실질적 첫 패배를 경험한 소크라테스의 항변은 일견 무기력하게 들렸다. 그는 "정의란 부채를 갚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힘이 곧 정의라는 트라시마쿠스의 정치한 논리에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한다. 

그 당시 나는 소크라테스의 정의에 관한 정의 "부채를 갚는 것"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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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정직 공무원 (외교통상부 부교수) 신분이다. 대학을 위해 일하다가 정부를 위해 일하게된지 얼추 6년이 지났다. 

바쁘게 이 일 저 일 하다보면, 별 생각없이 월급날이 다가오게 되고, 카드대금은 많고, 봉급에 살짝 불만을 가졌다가 다시 바쁜 생활에 매몰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나는 외국에서 유학한 지식인이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어디가서도 말빨이 뒤지지 않는 '똑똑한'사람이라고 애써 믿으려 했고, 또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고 있다고.... 따라서 난 세상의 왠만한 사람들보다는 잘 난 사람이어야 했으며... 반면 내 디그니티에 비해서는 월급이 형편없이 낮은 것 아닐까 하며 나를 홀대하는 한국사회에 내심 불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나온 스토리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기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그다지 인상적이거나 특출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렵게 사는 한 40대 가장이 하루 종일 일하고 세금 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내 사유속에 그 평범한 다큐멘터리 뒤에 깔린 정황이 비집고 들어왔다. 문득 내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고 입고 먹는 모든 '돈'의 일부가 바로 저 사람이 힘겹게 낸 세금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 가족과 내 가족과는 별무상관의 관계가 아니라... 저 가족이 내 가족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내 급여에는 당연히 국민의 '혈세'가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서 국민이라 함은 다 잘사고 풍요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힘겹게 아끼고 쪼들리며 살아가는 이들도 당연히 섞여 있을 것이었다. 어려운 이들이 힘겹게 낸 세금으로 나는 건이의 스키캠프 참가비를 대고 있으며, 영이의 피아노, 태권도 레슨비와 또 우리 가족 해외여행비를 마련한다. 

생급스럽게도, 요즘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며 그들이 내 생계를 구성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빚을 진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일정부분 맘을 무겁게 한다. 

무거운마음만 버겁게 이고 살 일은 아니다. (공무원 생활을 계속한다면) 국민들에게 평생 지고 갈 빚을 갚는 일이 우선이며, 결국 하루하루의 일상을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빚을 갚는 일인지 .. 다시한번 삶을 다잡게 된다. 

'폴리테이아'에서 소크라테스가 토하던 열변은 당시 그리이스 철학의 단순한 말 논쟁이 아니라... 2011년 이른 봄 내 삶속에서 중요한 화두가 된다.

 

"'정의(justice)'는 '부채를 갚는 것'에 다름 아니네"

 

나는 국민들에게 빚진 자이며, 납세자 (tax payer)에 대한 부채를 갚는 것... 그것이 내겐 가장 중요한 정의인 셈이다. 적어도 소크라테스의 저 혜안에 동의를 하는 한... 

덧. 난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역시 같은 생각이 든다. 학생들 하나하나가 어렵게 아르바이트해서 마련한 등록금의 일부를 나는 꼬박꼬박 받아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허투루 강의할 수가 없다. 요즘은 강단에 서면 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불성실한 강사인 내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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