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사람의 자질 강의실에서

 유학가기 직전 정외과 선배 강혜련 박사님이 내게 물었다. 

"남식이 너는 탁월성에 의존해서 공부할래? 아님 성실성에 의존해서 공부할래?

내 탁월성이 사실 뭔지 잘 몰랐고, 선배 앞에서 탁월성에 의존한다고 하면 버릇없다고 할 것 같아서 '성실성'에 기대에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어쩌구저쩌구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이 족쇄가 되었는지, 늘 나는 스스로 탁월하지 않으며, 믿을 것은 성실성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문제는 성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게으른 나 자신을 바라보며 유학시절 내내 허덕허덕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 학위도 마치고, 직장도 잡고, 나름대로 안정적인 위치에서 곰곰히 '공부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면 한가지 자연스레 내려지는 결론이 있다. 

공부하는 사람의 최대 탁월성은 논리력도, 호소력도, 치밀한 계산력이나 추론과 사유의 훌륭함이 아니다. 

바로 '호기심 curiosity'이 최고의 잠재력이라는 것이다. 탁월성의 본질은 '호기심'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공부할 사람은 그 호기심을 유지하며, 반드시 궁금한 점을 알아내는 끈질김이 있어야 하고, 바로 그 덕목이 성실성과 매치되는 듯 하다. 

개가 새끼를 낳는 걸 보고 빨리 키워 잡아먹자는 사람과, 연구실에서 개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사람의 호기심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떨어지는 사과가 곯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과,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은 똑같은 사람이나 그 호기심의 차원이 달랐다. 

그저 교회가 시키는대로 따라하던 순진한 성도들과, 성실한 신부이면서도 성서에 관한 궁금증과 진리에 관한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마틴 루터는 그 삶의 차원이 달랐다. 

인생을 걸고 알아가고 싶은 하나의 주제가 있을 때... 그걸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그 이는 공부할 사람이다. 그리고 공부는 단순히 학위를 한다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이다. 장삼이사도 훌륭한 학자일 수 있다. 호기심, 그 대주제만 간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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