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을 입어라 세렌디피티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느낄때가 있었습니다. 어떤때는 가슴이 말라버려 모든 의욕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가끔씩 '팔리아치'라는 오페라를 즐겨듣곤 했습니다. 

이 오페라 역시 대부분의 오페라들이 그렇듯이 심오한 의미나 역사적 장엄성 같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여인을 아내로 둔 어떤 광대의 이야기로 차라리 삼류 불륜소설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이 곡을 들으면서 새롭게 자신을 추스리고 돌이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곡 끝부분에 나오는 구슬프면서도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테너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 (베스티 라 주바) 때문입니다.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볼 때일수록 이 곡이 생각납니다. 어떤 때는 저로 하여금 무던히도 눈물 흘리게 했던 한 슬픈 남자의 노래입니다. 

광대, 그는 가무단의 삐에로입니다. 방방곡곡을 유랑하면서 웃음을 파는 사람입니다. 맨얼굴을 알아볼 수 없이 더덕더덕 칠해진 화장 속을 잘 들여다보면, 구성진 자기 이야기와 비밀을 간직한 이이지만, 많은 이들앞에 그는 억지로 웃고 떠들어대는 타고난 광대입니다. 하루하루의 무게에 짓눌리며 삶을 이어나가면서도 그는 사랑스런 자기 아내 때문에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다시 하루를 짊어질 용기와 웃음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자기 아내의 부정을 알게됩니다. 바르르 떨며 분노하다가 결국 오열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그가 무대의 설 시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보려고 극장에 운집해있습니다. 막 뒤에서 그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 때, 이 아리아가 나옵니다. '의상을 입어라, 너는 광대, 의상을 입어라.... 막이 오른다. 의상을 입어라. 너는 광대....' 그는 눈물로 덕지덕지 흐트러져버린 화장을 추스리며 옷을 챙겨입고 무대에 오릅니다. 속으로 울면서 밖으로 웃습니다. 그는 광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죽음의 고통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의 사명은 다른 이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적쟎이 힘든 시간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별로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tolerance를 많이 잃어버리고, 마치 장작불 아궁이처럼 쉽게 타올랐다가 쉽게 사그라들곤 하는 감정에 쉽게 좌절하고 쉽게 분노하기도 합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세울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맨손의 삶을 젊음의 낭만으로 치부하며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능과 절망의 징표가 되기도 하는 그런 파도속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됩니다. '의상을 입어라. 너는 광대. 막이 오른다. 의상을 입어라. 너는 광대...' 제가 해야만 할 일을 되새겨 줄 그 노래를 지금은 기억의 밭속을 더듬어 듣고 있습니다. 비록 광대처럼 많은 이들을 웃기는 사명은 아니지만, 저는 저에게 주어진 달려갈 길과 사명이 있으며 그 길에 생명을 걸어야 하고 그 길 위에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손에 제 소명의 페르조나를 챙겨들고 무대에 오릅니다. 그것은 어느 대학 교양영어 교재의 제목처럼 "연극은 계속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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